제 이름은 김정효입니다 아버지가 작명소에서 얻어온 이 이름은 지금까지도 저를 나타내는 .고유명사입니다 부모님이 제 이름을 부를 때 저는 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"정효야!" 하고 불렀고 저는 "정효야!" 라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..

 이처럼 제 이름은 저를 가리키는 단어로 저 이외의 사람은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동명이인(同名異人)이 있을 수 있습니다. 고등학교 때 제 반에는 '박인규' 라는 친구가 둘 있었습니다. 한 녀석이 다른 녀석보다 커서 우리는 그 둘을 '작은 인규' '큰 인규'로 나누어 불렀습니다 어쨌든 박인규라는 이름이 사람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이름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일대일 .대응 관계를 이룹니다 나는 나 외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.

 그러나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. 호명할 수 없으니 저를드러내는 속성들로 대신 부르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'어이 총각!'으로 불리었고, 지금은 상점이나 매장에 가면 '아버님'이라고 불립니다. 매장 직원의 눈에는 그들의 부모와 비슷한 연령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. 이때 제 이름 즉 '김정효'와 '총각' 혹은 '아버님'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. 김정효는 고유명사인 것에 비해 총각은 일반명사입니다. 이 차이는 다시 대체 불가능성과 대체 가능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. 고유명사는 대체 불가능하나 일반명사는 대체 가능합니다. 그런데 고유명사와 일반명사에는 더욱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. 개념의 유무가 그것입니다. 고유명사에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. 그러나 일반명사에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김정효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. 그러나 '총각'이라는 개념은 존재합니다.

 오늘 저의 발표는 이 개념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. 개념이란 의미의 집합체를 말합니다개념은 사회적으로 의미를 소통하는 낱말의 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앞에서 예를 든 '총각’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. 이때 총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쓴다면 .총각에 대한 개념을 가지는 것입니다. 우리가 어떤 사람을 나무랄 때 쓰는 "개념이 없다."라고 할 때의 그 개념도 여기에 해당합니다. 상병에게 경례하지 않는 일병이 있다면 그는 아직 .계급의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. 세 살 아이에게 오만 원을 주어도 기뻐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.돈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.

 이처럼 개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갖는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성질을 말합니다. 자 그러면 이 개념을 체육과 스포츠에 적용해 봅시다. 여러분들은 체육과 스포츠를 개념적으로 구분 .할 수 있습니까? 그 둘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요? 오늘 제 발표의 주제는 체육학을 둘러싼 개념의 문제를 짚어보고,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규명해 보는 일입니다.

 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동안 우리 학회 즉 '한국체육학회' 혹은 '체육학'은 그 개념에 맞지않는 명칭을 써오고 있었습니다. 이는 마치 '건어물'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배와 낚시 도구를 팔고 있는 형국과 비슷합니다.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5리터의 용기에 38리터의 물체를 넣어 놓은 사태와 다르지 않습니다.

 이 기형적인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저는 먼저 개념을 명료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. 즉 체육의 개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며, 그 개념으로 현재 우리의 분야가 제대로 설명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. 그런 다음 체육과 매우 유사하게 쓰이는 스포츠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밝혀 볼 것입니다. 이는 스포츠가 체육의 대체 개념이 .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. 만일 스포츠가 체육의 대체 개념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또 다른 대체 개념을 찾아야 합니다. 저는 그 가능성을 '운동'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. 오늘 저의 발표는 마치 MRI촬영과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. 체육학을 둘러싼 제반 명칭의 개념적 정의를 들여다보고, 무엇이 가장 우리를 잘 드러낼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하는 시도로 명칭의 수정을 촉발하기 위한 마중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.